[나우누리][버터빵] 연. 애. 편. 지. (2191/37582)

추억의 유가촌(유머가 가득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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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촌 레전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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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나우누리][버터빵] 연. 애. 편. 지. (2191/37582)

포럼마니아 1 6,368

1.
책갈피란 별로 쓸모가 없는거야. 설령 전에 읽은 곳이라고 해도 어짜피
생각이 안나면 다시 읽어야 되는걸. 표시를 해 놓고 그 전 내용은 다 안다고
착각하는거 보다는 그냥 쭉 펴 보고 내용이 생각나는 곳부터 읽는게 더 낫잖아.

성현은 도서관 2층 창가에 앉아 9월의 햇빛이 하.염.없.이 내려쬐는 창 밖을
바라보며 쓸데 없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개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학교는 어수선 했지만 그래도 방학이 끝나고, 한 학기가 시작되고, 이수
학점을 채워야 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되고, 학교의 맛없는 식당 밥을
억지로 꾸역꾸역 먹어야 되고, 말도 안되는 교수의 문제에 말도 안되게 해답을
달아야 하는 또 하나의 학기가 시작 된 것이다.

도서관 안은 한산했다. 9월이 되면 바람이 벌써 많이 차가워지는 계절.
스산할때 누군가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많이 드는것도 9월이라
대부분의 짝 있는 사람들은 도서관에 황금같은 오후를 투자할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게 된다. 그러나 성현은 그렇지 못했다. 이제 대학 2학년. 1학년 때만
해도 가끔 소개팅 미팅들이 들어왔지만 이젠 그나마 2학년이라고 들어오지도
않는다. 억지로 구걸하다시피 해야 가끔씩 들어오는 소개팅, 그것도 벌써
괜찮은 여자들은 오래전에 다른 사람들이 다 낚아채갔다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한결같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들뿐이었다. 물론....그 여자들도
성현이를 맘에 들어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2.
그건 신촌거리에서였다. 그렇게 달라져 있을 줄은 몰랐다. 국민학교때만 해도
그저 짝이란 이유만으로 매일 붙어다니던 그 애. 책상 가운데에 줄을 긋고
손이 넘어오면 찰싹 찰싹 얄밉게도 때려대던 그 애. 가끔 보면 쫑긋 맨
말총머리가 귀엽게도 보였던 그 애. 국민학교 6년 내내 붙어다니다가 중학교를
가고 난 후부터는 차츰 서먹해 지더니 그동안 연락 한 번 안되고, 아니 생각
한 번 나지도 않았던 그 애가 바로 저기, 독다방 앞의 창천교회 골목으로 몇
몇의 친구들과 걸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머리나 식히러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건물 3층의 만화뱅크로 바쁘게
걸어가던 성현의 눈에 옛 국민학교 친구인 주민이 보인 것은 순간이었지만
그냥 스처 지나간 뒤에도, 만화책을 볼 때에도, 지하철을 타고 삼성역으로
향할때에도 그 뒷모습은 계속 성현의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골목 시장 근처에서 오늘 밤 먹을 과자와 음료수 종류를 사서 집에 들어가며
성현은 생각했다.

주민이...걔 전화번호가 어디 있더라?


3.
성현이는 남들이 말하는 소위 쑥맥이었다. 여자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뛰고,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버리는 신체적 현상을
성현이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기엔 22살의
청춘이 그냥 썩을 거 같아 여러번 고처보려고 시도도 해 보고, 심지어는
우황청심환까지 먹고 소개팅을 나가봤지만 결과는 번번히 실패였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
...
....
.....
......
.......
........
.........
.......... "

항상 그랬다. 인사 뒤엔 그냥 할 말 없음... 그리고 한 10분 쯤 뒤에는
선약이 있다고 나가버리는 여자들도 항상 똑같았다. 주위의 친구들이 전부 다
짝을 찾아서 따뜻한 가을을 보낼 생각들을 하고 있지만 성현이는 어떻게 하면
혼자서 이번 가을을 그나마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보게 된 옛날 국민학교때 친구. 성현이는 아직도 분명히 기억했다.
주민이가 국민학교 6학년, 졸업식때 귀엣말로 한 소리를.

" 우리 나중에 결혼하는거다."



4.
아마도 주민이는 기억하지 못할게 분명하지만 성현이는 그날, 신촌에서
우연히 주민이를 본 이후로 계속 마음을 가눌수가 없었다. 이건 중학교
3학년때 생물선생님한테 느꼈던 것도 아니고, 요즘 텔레비에서 잘나가는
김지호를 보면서 느끼는 것도 아니고, 괜히 그냥 울렁거리면서 다시
보고싶고, 그러다가 다른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비집고 다시 생각이 나고,
자기 전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 국민학교때 모습과 그 때 본 모습이 겹쳐서
아른아른 눈에 떠오르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냥 단지 뒷모습 한 번 본
것 뿐인데. 아마 그냥 지금 때가 가을이니깐 그런 걸 꺼야. 괜히 여자 친구
없으니까 그냥 이러는 걸꺼야. 혼자서 변명 아닌 변명을 되뇌어 봐도 그렇게
성현이를 감싸는 생각들은 여전히 계속 되었다.

그냥 ...한 번 전화를 걸어볼까. 국민학교때 앨범에 있던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았을까. 아직 나를 기억할까. 전화를 하면 뭐하고 하지. 아마도 난 또 말을
못하게 될 꺼야. 그럼 어떡하지. 어떡해야할까... 그럼 그냥 전화를 하지 말고
모른체 할까. 아냐. 지금 이 맘을 그냥 참기엔 너무 힘들어. 그냥 .. 날
기억하는지, 안하는지라도 알고 싶어. 어떻게 하지...어떻게 하지..어떻게
하지.....

결국 다음날 무작정 전화를 하고, 할 말은 만나서 편지로 전해주기로 마음
먹은것은 새벽 3시나 되어서였다.



5.
주민에게.
나 성현이야. 나 누군지 기억하겠어? 그..신잠 국민학교 5학년 3반 박 성현.
너랑 짝꿍이었잖아. 기억 나니? 기억 안나면 할 수 없구. 실은 전에 신촌을
갔다가 우연히 너를 봤거든. 그래서 전에 친하게 지냈는데 연락도 못하고
그래서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이제 다시 친하게 지내면 어떨까 해서..옛날처럼.

이건 너무 ...그냥 편지같다. 그래도 큰 맘 먹고 쓰는건데. 다시 쓰자.

주민에게.
성현이란 이름을 기억하니? 국민학교때 ..나랑 지우개 따먹기도 하고
놀았잖아. 그때 ..졸업식때 네가 한 말 기억나니? 결혼하자던 말. 물론
지금이야 농담이지만 그 때 기억을 살린다면 .. 네가 만약 사귀는 사람이
없다면 나랑 사귀어 보지 않을래?

윽. 이건 너무 속 보인다. 그저 국민학교때 친구인데 이런 말까지 해서
들먹일 필요 있나. 그래, 다시 쓰자.

.....

다시쓰자.

.........

아냐. 다시 쓰자.

..........

그래. 됐어.



6.
따르릉~~

" 여보세요?"

" 거기 주민이네 집인가요?"

" 네, 그런데요?"

" 저, 주민이 친군데요, 지금 주민이 집에 있습니까?"

" 아니, 아직 과외 가서 안왔는데. 전화왔다고 전해줄까?"

" .....예.그럼 전해주세요. 저.."

" 아, 마침 주민이 들어오는구나. 주민아~ 네 친구란다. 전화받아봐라."

" 여보세요?"

" 여보세요? 나 누군지 알겠어?"

" 응...아..모르겠는데..미안한데 누구니?"

" 나 성현이라구..옛날 국민학교때 친구. 기억나?"

" 어~~~!! 응~! 그래 너구나~! 그래 오랜만이다~~"

" 그래...기억해 줘서 고마워.저 ...너 내일 밤에 시간 있니? 뭐 전해줄께
있어서 그래."

" 그래? 그럼..음...9시에 놀이터 시계탑 앞으로 나갈께. 괜찮지?"

" 응..그럼 그때 보자."

" 그래, 안녕."

뚝.

그리고 성현은 알지 못했다. 지금의 대화가 또래의 여자랑 한 대화중에서
제일 자연스럽고 긴 대화였다는걸.



7.
시간은 이미 9시 1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끼는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진과
감색 티셔츠를 입고 생전 발라보지도 않았던 무스도 조금 바르고 나와서 8시
50분부터 기다렸는데 시계탑 근처에는 평소에 그렇게 자주보는 세탁소
아저씨마저 지나가지 않았다. 그래. 그래. 일이 이렇게 쉽게 될 리 없지.
어제는 그냥 말대꾸 해 준 걸꺼야. 실제로는 생각도 안나면서. 내 주제에..뭐
되나 하고 바랬던 내가 잘못이지. 그만두자.

성현이는 편지를 꾸깃 꾸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 순간,

" 미안해, 너무 늦었지...오늘 과외 하는애가 뭘 좀 많이 물어봐서..미안해."

순간, 주민이의 목소리를 듣고 주민이를 바로 앞에서 본 순간, 어제는
괜찮겠다 싶었던 예의 그 병이 또 도지고 말았다. 숨이 갑자기 탁 막히고,
말도 제대로 안나오고 얼굴이 발갛게 되어버리는...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성현이는 주머니 속에서 집히는 꾸겨진걸 그냥 보지도
않고 주민이 손에 쥐어주고는 그냥 도망치듯이 달려갔다. 뒤로 그냥 멍청히
서있는 주민이를 남겨둔 채....



8.
전날 밤, 자신이 밉고 한스러워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성현이는 학교에
와서도 계속 그 생각만 떠 올랐다. 편지를 읽고 주민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뭐라고 할까. 나한테 다시 연락을 하긴 할까. 그럼 난 또 뭐라고 하지.

온갖 잡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지만 다 제껴버리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 성현이니? 아까 주민이라는 애한테서 전화왔더라."

성현이는.....그냥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이건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나한테 연락을 한 거야? 편지를 읽고?

" 왜 그러고 우두커니 서 있니? 어서 닦고 밥 먹어야지."

" 예. "

바로 전화기를 집어들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그렇게 그냥 기다렸다는듯
바로 하는건 너무 속보이는 짓 같아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넘기고
평소에 먹지도 않던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신 후 긴장을 풀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감추고 전화를 했다.



9.
" 여보세요? 거기 주민이네죠?"

" 응. 나 주민인데. 너 성현이구나."

" 그래. 우리집에 전화했다면서? 무슨.."

목소리가 너무 떨리는 것을 알고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 그래, 무슨 일이야?"

" 너 어제 ..나 만났을때 2000원 왜 주구 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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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AVgirl쭈리❤️ 21-10-28 21:16
결혼할 여자의 외모는 3개월 가지만 못생긴건 평생간다라는 말이 있어요~ 오빠는 이쁜 여자랑 살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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