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누리][버터빵] 이. 별. 일. 기. (6) (2306/37582)

추억의 유가촌(유머가 가득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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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촌 레전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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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나우누리][버터빵] 이. 별. 일. 기. (6) (2306/37582)

포럼마니아 1 9,235

- 11월 7일. 날씨는 왜 맑음 아니면 흐림 아니면 비 아니면 눈인가. 아무튼
오늘은 하늘이 파랗고 햇볕이 따갑고 바람이 기분 좋았다. -

난 술을 마시면 3단계로 변신한다.

우선 잔다. 아무데서나 그냥 막 잔다. 이거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아는가.
전에도 트럭 위에서 파란 옷 입고 자서 하마터면 얼어 죽을 뻔 했는데,
여름이면 몰라도 겨울에 이러면 딱 얼어죽기 좋다.

그리고 잠을 못자게 된 상태에서 술을 더 마시면 집에 간다. 그냥 막무가내로
술집에서 튀어 나와 버린다. 귀소 본능인가. 아무튼 이 버릇은 그냥 그런대로
봐 줄 만 했는데, 문제가 된 적이 한 번 있었다. 저번 고등학교 동문회때 이
단계까지 와서 그냥 집에 와 버렸는데, 문제는 내가 총무였다는 것이다. 회비
걷은거 다 내가 가지고 집에 와 버렸으니... 듣기에는 동문회 사람들 돈
없어서 경찰서까지 갔단다. 그 뒤로 동문회 나가면 선배고 동기고 후배고
나한테 절대 술 안멕였다. 총무였을때까지만. 총무 끝나고 나서 내가 당한 거
생각하면.. 그래. 그때 다음 단계까지 갔었지.

다음 단계는 말투가 변한다. 그렇다고 욕을 한다든지, 험악한 말을 쓴다든지
그런게 아니고.. 에.. 아! 예전에 무슨 다큐멘터리 같은 거 할때 나오는
목소리로 변한다. 이를테면, "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젊음을 불살라 이 술을
마셔야 한다. 동지야. 마시자. 이 밤 우리 한 번 젊음으로 불태워 보자꾸나.
아저씨~!! 이거 계산이 이상한 것 같아요~!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이따위 알콜의 값이 어이하여 이렇게도 비싸단 말입니까, 아아. 지구의 앞날이
걱정이다... 온난화 현상과 엘리뇨 현상 때문에 안주값이 이렇게 비싸진건가..
음냐.. " 이런단다. 이런 말들을 하고 술을 마시니, 옆에 있는 친구놈들이
안웃고 배기겠는가. 그래서 내가 이러는 꼴 볼려고 술을 퍼 멕이는데, 보통은
자든지 아니면 집에 가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제 분명히 술 먹고 영경이 삐삐 들은
다음에 집에 온 것 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집에 와서부터 필름이 끊겨서 지금
오후 1시나 되어서 일어날 때 까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거다. 이거
환장한다. 도대체 내가 전화를 걸었는지, 아니면 그냥 잤는지.. 도대체 기억이
없다. 만약 전화를 했으면.. 아마도 고운 소리 안나갔을텐데.. 게다가 혁진이
어쩌구 그런 소리 했으면.. 아이구, 아이구.

내 스스로 한 일을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무서운 것인 줄
몰랐다. 필름 끊긴 적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 때는 대충 잘 넘어갔는데, 어제
일은 좀 다르다. 만약 내가 영경이한테 전화를 했으면... 이제 난 영경이 다시
보긴 글러먹은 셈이다. 하긴,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다시 보기 힘들었겠지만.
이런 얘기 하는 것 보면 떠나갔다고 생각했어도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영경이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멍청이.

아무튼 내가 전화를 했었는지, 안했었는지 알아보는 단 하나의 방법은
영경이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전화 걸어서 영경이 목소리 들으면
내가 전화를 했었는지 안했었는지 알게 될 테니까. 그런데 맨 정신으로 어떻게
전화를 해. 또 술 먹어? 미쳤구나. 전화 하면 무슨 얘기 하지. 잘 있었냐고
물어볼까. 그 사람이랑은 잘 되느냐고 물어볼까.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느냐고
물어볼까. 가끔.. 아주 가끔이라도 내 생각 나느냐고 물어볼까. 내가 준
반지는 아직 끼고 있느냐고 물어볼까. 내 사진들은 앨범에 아직 남아 있느냐고
물어볼까. 다이어리에 내가 준 네잎 클로버가 그대로 있는지 물어볼까.
헤어지기 전에 발목이 다친 건 다 나았냐고 물어볼까.

무려 세시간동안 전화기 앞에서 고민 했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무슨
얘기를 할지. 혹시나 어제 전화를 했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그렇게 긴
시간동안 생각해서 나온 결론은..

" 에라 모르겠다~! 일단 걸고 보자~! "

삑삑삑 삑삑... 덜컥.

그냥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손이 떨렸다. 영경이가 받으면 내 목소리인거
알아볼까. 아차. 마져. 영경이가 안 받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받으면 어떡하지.

" 에라 모르겠다~! 일단 걸고 보자~! "

삑삑삑 삑삑삑삑.

번호를 누르는 그 잠깐동안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

통화중인가..

덜컥.

휴............

통화중이라서 전화를 끊은 건데 꼭 금덩어리 하나 줏은 기분이다. 왜 이러지
기분이. 그냥 전화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피하려고 드는 거지. 내가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해도.. 아냐. 난 잘못한 거 없어. 그냥 걸꺼야. 몰라 나두. 한
10분 정도 있다 걸어야지.

"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

뭐 이렇게 전화를 오래 써.. 이번엔 30분 정도 있다가 걸어야지.

"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

으으으~!! 이영경~! 너 전화 안끊을래~! 으으으~! 큰 맘 먹고 전화 하는건데
왜 자꾸 통화중이냐구우~~~!!

열받았다. 괜히 열이 머리 뒤통수로 올라 왔다. 전화가 통화중이라 내 전화를
할 수 없다는 것 보다, 과연 영경이가 누구랑 이렇게 오랫동안 전화질을 하고
있을 까를 생각했기 때문에 열이 올라왔다.그 놈이겠지. 혁진인지 뭔지 하는
그 놈.

좋아하는 사람끼리 전화를 하게 되면 끊기가 힘들다. 굳이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오늘 하루 있었던 얘기, 친구한테 들은 얘기, 또 그런
잡담들을 하는데도 시간은 한시간, 아니 두 세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린다.
내일 숙제도 있고 레포트 낼 것이 있어도 차마 먼저 끊자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숙제 해야 되는데.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목소리가
달라지나 보다. 금새 눈치를 챈다.

" 왜 말이 없어? 무슨 생각해 ? "

- 숙제 생각.

" 아니..뭐.. 그냥.. 너 생각해. "

" 괜찮은거야? 내일 할 일 없어? "

- 열라 많아.

" 응.. 그냥 그래. "

" 너무 늦었지. 너도 할 일 있을텐데 괜히 내가 잡고 있는 거 아니니? 우리
전화 끊을까? "

- 응.

" 아냐아냐~! 넌 괜찮아? "

" 응. 나야 괜찮아. "

" 그럼 더 얘기 하자. 아 마져~! 오늘 학교에서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어쩌구.. 저쩌구.. "

" 동현아. "

" 응? 왜? "

" 저기.. 나 지금 졸리거든. "

- 옳다구나~! 이제야 끊을 수 있겠구나~!

" 그런데..나.. 네 목소리 들으면서 자구 싶으다. "

- 헉.

" 넌 그냥 얘기 해 주면 안돼? 나 네 목소리 들으면서 잘래.. "

" 알았어. 노래 불러줄까? "

" 응. 조그맣게. "

" 음.. 뭘 불러줄까... 밤이 아름다워어~ 잠이 오질 않아~ 문을 열고 가만히
창가에 앉아~ 마음에 새겨 놓은~ 수많은 얘기 속에~ 그대에게 하고 픈 말 사랑
합니다~ "

" 응.. 나두.. ..."

에잇. 괜히 옛날 생각 하지 말고, 다시 전화나 걸자.

삑삑삑 삑삑삑삑

" 따르르릉~ 따르르릉~ "

앗.. 걸렸다~!

딸깍.

" 여보세요? "

덜컥. 심장이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영경이 목소리였다. 11일 만에 듣는
목소리. 하지만 꼭 11년 만에 듣는 것 같았다.

" 여보세요?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까 할 말 생각했던 건 다 날아가 버렸다.
머릿속이 백지장이다.

" 여보세요? 왜 말이 없어요? "

" ..... "

" 혹시 혁진이 오빠에요? "

" ..... "

" 너 동현이니? "

" .... "

" 그지? 동현이지? 맞지? 그렇지? "

딸칵.

나도 모르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말하고 싶었던 10만가지도 넘는 이야기들을 하나도 못하고

그냥 가슴이 떨려서

나도 모르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휴..........

따르르릉~ 따르르릉~

또 누구야. 왜 이럴때 전화를 걸어.

딸칵.

" 여보세요? "

" .. 나 영경이야. 혹시 방금 전화하지 않았어?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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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AVgirl쭈리❤️ 21-10-28 21:19
사랑 없는 섹스는 무의미한 경험이래요.. 하지만 무의미한 경험이란 때론 굉장히 좋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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