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누리][버터빵] 아 버 지 (433/37570)

추억의 유가촌(유머가 가득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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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촌 레전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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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나우누리][버터빵] 아 버 지 (433/37570)

AVTOONMOA 0 4,344


" 터빵아 아이스 크림 사오너라. "

" 뭘로 사올까요? "

" 항상 먹던걸로. "

" 네. 아버지."


< 1 >
제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시절, 그때의 모습이 담긴 회색빛 사진들은 아버지의
책상 서랍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젠 시간의 손길로 연노랑
색으로 퇴색되어버린 사진들 속에서 아버지는 볼이 어깨에 닿을 정도로 늘어진
우량아 터빵이를 안고 싱글벙글 하고 계시고, 목욕을 안하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저를 힘겹게 닦아주고 계시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저를 어머니와 같이
안고 빙글 빙글 돌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항상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시곤 하셨습니다.

" 니 애비는 쌀 살 돈은 없어도 꼭 외제 비누를 사다가 널 목욕시켰구만.
회사 갔다가 집에만 들어오면 발냄새 풍풍 풍기면서 너 한번 안아보고
씻겠다고 온 방안을 냄새피우면서 돌아댕기구... 참 극성이었어, 극성.."

하지만 가까스로 기억나는 6살의 어느날 이후로 전 아버지한테 한번도 안겨본
적이 없습니다.

한번도.



< 2 >
6살의 크리스 마스에는 눈이 참 많이도 왔습니다. 차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며 전 어머니께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면 싼타 할아버지가 앞이 안보여서
우?nbsp ??nbsp못찾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고 있었고, 건담 조립식 상자는 어디
도망칠세라 제 오른손에 꼭 붙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눈을 떠 보니 전 아버지의 품에 안겨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참 따뜻했습니다. 이 따뜻함이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 이후로 기억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 잠만 자는 아빠, 놀아주지 않는 아빠"
였습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텔레비젼 앞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나가셔서는 또
밤 늦게 들어오시고. 동네 아이들이 아빠랑 어린이대공원 간다고 자랑할 때 전
방 에 처박혀 엉엉 울어댔고, 텔레비젼에서 하던 디즈니 명작극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정원에서 접시를 날리는 내 또래의 꼬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언제나 잠만 자는 아빠. 맨날 밖에만 있는 아빠. 터빵이랑 안놀아 주는 아빠.

아빠 미워.



< 3 >
중학교 3학년때 전 과학 고등학교를 가려고 학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보충수업 때문에 저녁 8시가 넘게 끝나서 집에 빨리 가려고 부리나케
일어서는데 친구가 부르더군요. 아빠차 타고 같이 가자고.

친구와 함께 차를 타는 순간 운전석에 앉아계시던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 너 fortune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 "

" misfortune이요."

" 그럼 fortunately의 반대발은? "

" unfortunately요."

" 아깝다. 이건 모를 줄 알았는데. 좋아. 그럼 오늘은 빅맥 먹으러 가자."

빅맥이 뭘까. 그날 전 처음으로 맥도날드를 가서 친구 아버지가 사주시는
빅맥을 먹었습니다. 참 맛있더군요. 그리고 참 부럽더군요. 자식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버지.

집에 와서 전 여느때와 같이 주무시는 아버지 앞에서 울며 이야기 했습니다.
왜 아버지는 저한테 관심도 없냐고. 왜 아버지는 집에만 오면 주무시냐고.
나도 아버지랑 빅맥 먹으러 가고 싶다고. 그러자 아버지는 무슨 말씀을 하실
듯이 입술을 달착이시다가 아무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전 아버지
마음도 모르는 자식이라고 어머니께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그날 이불속에서 전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 4 >
어느덧 시간은 절 얼마만큼 철이 든 고등학생으로 만들어 버렸고, 어느새
아버지한테 놀아주지 않는다고 떼쓸 나이는 지나버렸습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전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이해라기 보다는
포기라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사랑에의 포기.

저희 아버지는 참 힘들게 살아?nbsp 읊決윱求? 매일 술만 드시고 집을 나가시는
할아버지 밑에서 어린 세 동생을 먹여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풀빵장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노래를 정말 못 부르시는데, 그게 어릴때
풀빵장사를 하면서 소리를 하두 질러서 저렇게 된거라고 작은 아버지가 넌지시
말씀해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그러다가 백령도로 군대를 가게 되었고, 거기서
어머니를 만나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섬의 동굴로 도망을 가시기까지 하면서
두 분은 결혼하셨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작은 방 하나를 빌어 살림을
차리셨고, 얼마 뒤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nbsp 琉??nbsp1년 뒤에는 동생이
태어났구요. 그 뒤 아버지는 당신과 같은 힘든 생활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하루도 안빠지시고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하셨고, 그래서 밤 늦게
집에 들어오시면 피로에 지쳐 그냥 쓰러져 주무셨습니다.

비록 그렇게 이해는 했지만 아버지가 절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어렴풋이 알게
된 건 제가 대학 입시에서 떨어진 날이었습니다. 침울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는 울고계신 어머니를 위로하셨습니다. 괜찮다고. 내년에 다시 하면
된다고. 전 그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만큼은 절대로 울지 않으실 단단한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밤 늦게 화장실에 가려다 본
소파에서 소리죽여 흐느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전 영원히 잊지 못할 껍니다.



< 5 >
며칠 전 일요일, 전 아버지와 함께 사우나를 갔습니다. 온탕에 들어가서 몸을
불리고 사우나탕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등의 때를
밀어주시겠다고.

" 터빵아. "

" 네. "

" 내가 너 등 밀어주는 게 얼마만이지? "

" 한 3개월 정도 되었을 껄요. "

"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 됐어요. 이제 제가 아빠 등 밀어드릴께요. "

" 아니다. 난 머리가 아파서 지금 나가볼란다. "

" 사우나도 안하고 나가세요? "

" 고혈압 환자는 사우나 하면 안된다고 그러드라. "

" 아빠 고혈압이세요!? "

" 그래. 이제 너랑 이런데 오는 것도 힘들겠구나.."

아버지가 나가신 후 전 뭐에 얻어맞은 듯 그냥 흐르는 물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오늘 집에 들어오는 길에는 아버지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 몇개 사가지고 와야
겠습니다. 그럼 어머니는 아빠 고혈압이신데 이런거 뭐하러 사오냐고
그러실꺼고 아버지는 제가 사온거니 먹겠다고 그러실 겝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합니다.



지...



- 이 글을 제 어린시절 기억 속에 있는
놀아주지 않으셨던 아버지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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